- 복싱M 조회수:714 220.116.196.146
- 2017-11-27 11:08:40
카메룬 출신 34세 압둘라예 아싼
세계군인대회 출전 뒤 서울에 정착
올해 한국 챔피언 돼 난민 인정받아
오늘 일본 선수와 국제대회 데뷔전
“복싱으로 성공해 돈 많이 벌고 싶어”

“흑산, 내 이름 좋아요.”
카메룬 출신 복서 압둘라예 아싼(34). 그에겐 이름이 또 하나 있다. 이흑산. 검은색 피부에서 따온 ‘흑’, 산처럼 큰 선수가 되라는 뜻의 ‘산’을 합쳤다. 코리아의 ‘코’ 자도 몰랐던 그가, 이제 자신을 품에 안은 한국에서 ‘챔피언’을 꿈꾼다.
이흑산의 고향은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도 다른 나라로 떠난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를 위한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16살 때 킥복싱을 접한 그는 군 팀에서 복싱하던 선배를 만나 입대했다. 군에 있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고,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돈도 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던 차에 2015년 10월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한국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4살 어린 동료 에뚜빌과 함께 무작정 선수단을 이탈했다. 이흑산은 “붙잡히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 무조건 남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할머니와 6살짜리 딸을 다시 볼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은 1994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지난달 말까지 난민 신청자는 3만82명. 그중 난민 지위를 얻은 건 3% 정도인 767명이다. 몇 달간의 짧은 체류 허가를 받은 경우도 1446명밖에 안된다. 난민이 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원을 받는다. 정부도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카메룬으로 송환됐을 때 박해받을 것이라는 공포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일단 이의 신청을 한 이흑산은 추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샌드백을 때렸다. 1년 4개월간 링 위에 선 건 한 번뿐. 구직도 여의치 않았다. 한국말도 못 하고, 신분도 불분명한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함께 탈영했던 에뚜빌은 비자 갱신 기간을 놓쳐 강제추방 명령을 받고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이흑산은 좌절감 속에 에뚜빌과 함께 눈물 흘렸다.

기대에 부응했다. 이흑산은 지난 5월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 수퍼웰터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다. 챔피언이 되면서 그의 사연도 알려졌다. 이일 변호사의 도움으로 지난 7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10개월이나 수용소에 있었던 에뚜빌도 이달 초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이흑산은 “한국이 내게 새로운 삶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지난 8월 1차 방어에 성공한 뒤엔 대전료의 절반인 30만원을 희소병 학생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국말은 여전히 어눌하지만 한국 음식은 잘 먹는다.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계탕. 24일 계체량을 마친 뒤엔 갈비탕에 밥을 능숙하게 말아 김치와 함께 먹었다. 그는 "김치는 정말 맛있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프로복서들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한다. 이흑산도 식당·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관원을 가르치고 용돈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엔 복싱에만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국제대회 데뷔전이 잡혔다. 25일 서울 신일고체육관에서 바바 가즈히로(25·일본)와 대결한다. 대전료는 90만원. 여기서 이기면 내년 4월엔 내년 4월엔 정마루(30·어바웃복싱)와 아시아 타이틀을 걸고 싸울 수 있다. 이흑산은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태극무늬가 들어간 트렁크를 입는다. "전 복싱으로 성공해 많은 돈을 벌고 싶어요. 일본과 한국 관계를 압니다. 이번 상대를 꼭 이기고 싶습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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